전체 글 (523) 썸네일형 리스트형 그럼에도 그럼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아무일도 하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걱정만 하고 있어도 온갖 결핍과 수치심을 품속 가득 안고 있어도 애쓰지 않아도 둥근 해는 붉은 낯을 내민다 수선(修繕)의 시간 수선(修繕)의 시간 새로 만들려면 고칠 곳의 솔기를 과감히 뜯어내야 한다 해어진 마음의 틈새네가 아팠을 자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 땀 한 땀 조심스레 바늘을 달래어계절을 다시 이어 붙인다 숭늉이 되기까지 숭늉이 되기까지 바스락바스락 바짝 말라 버린 마음 한 줌차디찬 양은 냄비 바닥에거칠게 주저앉는다 굳어 버린 기억의 두께보다 더 넉넉한 물을 붓고서로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타오르는 불길 위에 올린다 보글보글냄비는 슬픔을 삼키며 울어대고풀어져라 풀어져라 마법 같은 주문을 외운다뱅글뱅글 하얗게 피어오르는 김은 가슴속 멍울을 풀고서서히 아주 서서히 손을 잡는다 뜨겁게 차오르는 숨결이 오만했던 응어리를 녹이고마침내 부드러운 살결로 다시 태어난 숭늉툭, 툭, 던지던 모난 말들이 순해졌다넉넉해진 품 안으로가만히 스며든다 신호등 신호등 초록과 빨강의 길 위에서가로등이 지시하는 제 색깔의 온기를 따라우리는 약속된 걸음으로 걷는다정해진 속도로 흘러가는 순탄한 날들 어둠이 가장 짙푸른 새벽녘홀연히 신호가 끊기고 새벽 안개 번지듯황색 점멸등은 홀로 가슴을 쥐어짜며 깜빡인다경고처럼 혹은 속삭임처럼 지켜주던 울타리가 일순간 사라진 길목이제는 어둠을 더 깊이 살피고보이지 않는 모퉁이에서 멈춤과 나아감의 맥박을 스스로 짚어야 할 때 우리네 서툰 삶도 늘 선명한 불빛만 같지는 않아빛이 흐려지고 경계가 깜빡이는 그 순간이 오면주위를 낮게 더 낮게 내려다보며내 안의 정적을 깨워 걸어가야 하리 시선의 벽 壁 시선의 벽壁화려하게 가꾸어 놓은 꽃밭에 서면너는 이름마저 잃어버린잡초일 뿐세상의 기준이 세워둔 높은 벽 아래때로는 무심히 밟히고 지워지기도 하지 골바람 시리게 부는 거친 산길에 가면우거진 잡초 속에서 너만 홀로 우러러 보이지머무는 곳에 따라 낮아지고 높아지는인간사의 저울눈은 이토록 가볍게 흔들리니 화려하게 예쁘다는 것과 잘났다는 것돌아보면 모두 한때의 바람일 뿐 별것 아니지계절이 바뀌면 피고 지는 꽃과 풀처럼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그저 피어날 뿐 무관심 무관심방안을 스치는 발소리에그늘진 눈길 한번 구걸해 보지만이내 멀어져 가는 기척비명을 삼키며 오그라드는 잎사귀의 한숨하얗게 바래진 몰골로온몸을 떨고 있다 먼지 쌓인 창틀 위로 햇살은 요동치고작은 화분속 뿌리마저 흙을 놓아 버렸구나 용서 용서얼굴을 마주 보는 순간차가운 눈빛을 거두고그대 닮은 미소를 지어 봅니다 한 점의 유화 같은 표정을거친 붓 자국으로 얼룩지게덧칠하고 덧칠하던 미움들 다 지나간 일이라고서러운 기억을 흘려보낼 때감춰졌던 미소가 보입니다 용서는 너의 표정에 맞춰나의 표정을 포개어내 마음을 그려내는 일입니다 거름망 거름망푸른 하늘과 고운 꽃만눈으로 담았고따스한 바람과 선한 말만 귀로 들었거늘내 안을 가득 채운 그 아름다운 기억들은무슨 까닭으로 이토록 차갑게 변했을까몸이 만든 찌꺼기는 그래도 거름이 될 수 있으나입으로 뱉은 더러운 말은이웃의 가슴을 찌르니이제는 내 마음에 깊고 고요한 체를 걸어세상으로 외출하는 말 한마디를 바투 걸러내리라 이전 1 2 3 4 ··· 66 다음